Dramatic scenery

이재명 / 추효정 2인전  

2013. 3. 12 – 4. 3

본 적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풍경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현실 세계의 재현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가?

전시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재명은 전작들부터 첨예한 모서리를 가진 이미지들을 선보여 왔다. 그는 날카로운 선과 모서리들이야말로 도시 풍경의 정수라고 생각했으며, 나아가 사회적 시스템의 단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니쉬 과정을 마친 작품의 매끄러운 표면은 날카로운 면과 선의 조합이 가져온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의도적으로 아크릴물감을 얇게 도포하여 작품 표면의 질감을 배제한 작가의 의도는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재명의 작업 속에서는 유독 비정상적인 위치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 발견 되는데, 그것은 곧 도시풍경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시스템에 파묻힌 우리의 모습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과 거대한 사회의 구조 역시 사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만큼이나 유동적이고 한시적인 것이어서 일견 거대해 보이지만 쉽게 부서지거나 깨질 수 있는 얄팍한 존재라는 것을, 옅은 채색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

반면 추효정의 작품 이미지는 마치 이재명의 그것과 대척점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업의 주된 풍경이 건설현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추효정은 의도적으로 거칠게 덧바르거나 흘리고, 뭉갠다. 작품 속에서 명확한 형태를 가진 것은 오직 건설 현장의 노란 거푸집뿐이다. 일직선으로 곧게 그어진 거푸집의 명징한 외곽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뭉개진 풍경과 거대한 푸른 방수포는 현대 사회의 수직 지향의 욕망과 그 욕망을 획득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파헤쳐진 삶의 본질에 대한 재현이며 동시에 질문이다. 작품 속 건설현장의 시퍼런 방수포 이미지와 파헤쳐진 흙의 질감 자체가, 현대사회가 욕망의 실현을 위해 벌이고 있는 행위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고 있는 것. 더구나 한결같이 흐린 하늘 아래의 건설현장 혹은 건축물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은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효과적이고 직설적으로 알려준다.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작가들은 분명 우리가 본 것을 그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풍경들이 이토록 익숙할 수 없다. 그러나 불편하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사실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글에서도 여러 번 사용된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이라는 단어를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나타내다’ 혹은 ‘다시 제시하다’라는 의미의 이 단어에서 전시와 관련해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분명 ‘다시(, re)’에 있다. 두 작가는 직접 사진을 찍거나 이미지 수집을 통해 현실의 풍경을 가져온 후, 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고 다른 이미지들과 조합하는 형태의 작업 방식을 갖고 있다. 이 ‘수집-해체-조합’의 과정에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반영(reflect)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 ‘다시(, re)’ 창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작가의 작품 속에 보이는 저 극적인 풍경(dramatic scenery)은 작업 과정을 통해 투사된 작가들의 내면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든, 혹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에의 풍자든, 분명한 것은 두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은 대체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풍경이며 동시에 온전히 작가 자신의 풍경인 것. 이것이 우리가 작품을 통해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이유다.

덧붙여 이 전시에 한가지 미덕을 더 부여할 수 있다면, 두 작가의 변화의 시기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의 경우 전작에 비해 붓질의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터치 역시 과감해졌다. 작가는 전작들과 달리 아크릴물감을 조금 더 촘촘하게 바르고, 작품 속 이미지들은 건축물을 조합해 만든 이미지들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뒤섞인다. 추효정 또한 전작들에 비해 더 과감하게 붓을 놀린다. 더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들이 생산되었고, 이것은 마치 그녀의 초기 드로잉 방식을 다시 불러 온 듯 느껴진다. 매우 현실적이던 공사 현장의 묘사가 추상적으로 뭉개지거나 부조리한 형태로 조합된 작품들도 보인다. 세계가 변하는 동안, 작가들의 바라보는 방식과 내면의 풍경도 변하고 있다.

– 갤러리 버튼 함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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