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

김희연 / 조태광 2인전  <Still, Life.>

2013412() ~ 53()

두 작가의 작업실은 석관동의 아주 오래된 골목 끄트머리에 있었다. 평일 오후의 골목은 조용했고, 날은 쌀쌀했다. 걸을 때마다 낡고 지난한 삶의 풍경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지하 작업실에서 만난 작품의 이미지들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한 번도 누군가의 시선을 잡아 끌지 못했던 도시 뒤 안의 모습과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땅 위의 풍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문득, 사람 없는 석관동 골목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은 소음을 만든다. 그 어떤 동물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오직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만든다. 그래서 소음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소음을 들을 때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김희연과 조태광의 그림에서 소음이 제거되어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비단 그들의 작품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조태광의 작품 가운데에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등장하는 작업에서도 음성은 절대적으로 소거되어 있다.

작품에서 인공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활동’이 전혀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연은 매우 다양한 건축물을 그리지만, 작품 안에서 생동하는 삶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한눈에도 낡아 보이는 건물과 철 지난 수영장, 색이 바래고 금이 간 담벼락 어디에서도 오늘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난하고 소외된 삶의 더께만 가득하다. 방치된 건물은 그 흔적을 뒤덮을 만큼 무성한 숲의 모습이나 틈을 비집고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과 대비되어 공허하고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얼핏 오늘의 풍경인 듯 하지만 먼 과거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태광의 작업에는 아예 흔적 마저 없다. 활동 초기에 작품에 종종 등장하던 붉은 담벼락도 이젠 사라졌다. Google Earth를 이용한 전작에서 보이던 정돈된 경작지와 깨알 같은 인간의 형상도 없다. 그저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숲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의 그림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오직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뿐일 것이다. 숲이 지배하는 그의 그림은 김희연의 작업과 묘하게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의 엄청난 생명력이 덮어버린 소외된 풍경은 우리에게 위대함과 경외감과는 다른 느낌을 던진다. 사람이 떠났거나, 버려진 장소의 풍경이 주는 공허함은 거대한 자연과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으로 변한다.

얼핏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 것 같은 두 작가의 작업은 이면의 풍경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공간적인 이면의 이야기가 김희연의 것이라면, 시간적인 뒷 이야기는 조태광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면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우리의 풍경에 던지는 메시지를 알아채는 것이다. 일부러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 않았던 도시 풍경과, 어쩌면 먼 미래에 우리가 바라보게 될 거대한 숲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두려움이고 불편함이며 낯섦이다.

작가들은 디테일이 사라진 풍경과 화려한 색채의 숲의 이미지가 우리의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그러나 삐딱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얼핏 흔한 풍경화로, 혹은 조형성에 집중된 그림으로 곡해될 수 있는 두 작가의 작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그것이 현실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고, 나아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감성을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조용한 풍경은 시끄러운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 뒷면에는 고요한 삶(still, life)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 혹은 누구의 삶은 여전히 계속(still, life)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풍경이 정물화(still life)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그저 우리는 보지 않았고, 볼 수 없었을 뿐이다.

-갤러리 버튼 함 성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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