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ly

임주연 개인전

2013. 10. 8 – 10. 30

신도림

갤러리가 있는 혜화동에서 임주연의 작업실이 있는 신도림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불편한 의자에 앉아 서울 시내 그 뻔한 풍경을 한 시간 넘게 바라보는 것은 게으른 갤러리스트에겐 큰 고역이다. 길이 심하게 막히는 날에는 인천에서 오키나와 가는 시간만큼 걸린 적도 있으니, 그럴 때는 음악도 인터넷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어서 도착해서 아파트 사잇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대체로 정해진 자리에서 익숙한 포즈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기 때문에 임주연의 작업실은 편안하다. 안락한 소파나 넓고 환한 창이 없어도 그닥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분명 시간을 두고 찾아낸 최적의 배치가 만들어 낸 작업실의 밸런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작가가 보내준 이미지를 받아본 이후 들른 작업실은 어지럽고 불편했다. 똑같은 배치, 다르지 않은 작업들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파격이 있었다. 작년 개인전에서 슬쩍 보고 지나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있었던 것. 임주연의 풍경이라니. 2012년의 개인전에서 유심히 지켜봐야 했던 것이 한층 과감해진 붓질뿐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작품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전보다 더 멀고 고단했다.

연속적 징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작업의 방식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재현의 대상 역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기실 임주연의 작업은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었고, 그간 작업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명징한 이미지들은 희미해졌고 대신 거친 붓질과 흐르는 물감의 흔적이 돋보인다. 2011년 전시에서부터 그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으니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진행돼 온 변화다. 그러나 재현의 대상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 당황스럽다. 영국 유학 이후 카메라를 이용해 실내에서 벌어지던 이미지의 수집 과정이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길이나 차 안 등에서 동시에 진행되며, 탈의 과정과 작가 자신에 집중되던 재현의 대상이 외부 풍경, 특히 커튼이 쳐진 아파트의 베란다 풍경으로 옮아 가고 있다. 언뜻 이것은 임주연의 작업에 큰 간극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작가 자신의 탈의 과정과 커튼으로 가려진 아파트는 쉽게 생각해도 전혀 다른 이미지다. 시점의 변화는 작품 내에 큰 변화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변화의 이유, 즉 작가의 시점이 외부로 향하게 된 동기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작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임주연의 서울대 학부시절 작품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작품은 대상의 형태와 색채가 추상화되어 유기체처럼 보이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관람객은 제목을 보고서야 작품이 무엇을 재현했는지 알게 된다. 구겨진 옷의 구체적인 형태는 사라지고 주관적으로 해석된 특성만 남은 재현인 것. 마찬가지로 현재 탈의 과정을 재현한 작품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가 모호해지거나 거칠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 가늘고 단순한 선으로 재현한 작품들과는 다르지만 사물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뭉개버리거나 단순화시킨 이미지가 캔버스 위에 얹힌다. 풍경 연작들도 그렇다. 커튼은 실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도구다. 임주연의 풍경은 커튼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재현하지 않는다. 단순히 커튼에 맺힌 상을 재현할 뿐이다. 커튼에 맺힌 실내의 풍경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아도 온통 뭉개진 이미지다. 윤곽선은 사라졌고 색깔 역시 왜곡되어 있다. 크게 세 번의 시기로 나누어 볼 때 임주연의 작업은 “구체적인 형태가 사라지고 기본적인 특징만 남은 재현”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된다. 세 시기 모두 시각을 통한 지각을 늦추거나 아예 차단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시선이 자신에서 외부로 향하게 된 동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작업의 과정을 닮은 이미지를 다른 곳, 길 위에서도 발견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임주연의 풍경 시리즈는 원점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고, 순환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단순한 ‘과정’의 일부 일 수도 있다. 이 일관된 변화의 과정은 작가에게 변화의 동력과 당위, 그리고 타당성을 부여한다. 임주연에게 벗어 놓은 옷과 커튼에 비친 풍경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공통의 특성들은 무엇을 위해 발견되어야 했을까?

어디에든 닿은 풍경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작가는 ‘닿은 풍경’이라는 전시 제목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이 제목은 사실 풍경 연작의 제목이기도 한데, 신체에 닿아있던 옷과 커튼에 닿아있는 실내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전 작업들과도 충분히 연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튼에 닿은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점이 카메라의 작동원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이전까지의 전시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카메라를 이용했음에도 회화성을 잃지 않는 임주연의 작품에서 미덕을 발견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카메라를 이용하는 작업 방식 그 자체에서 미덕을 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내장된 거울에 닿으며 상을 맺는다. 디지털 카메라는 그 상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켜 저장하고 필름 카메라는 거울에 맺힌 상을 필름면에 다시 얹어 기록하는 것이 다를 뿐, 빛이 거울에 닿는 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커튼에 맺힌 상 역시 실내에서 벌어지는 어떤 현상, 혹은 집안 풍경이 발생시킨 빛이 직조된 천에 닿아 만든 것이다. 렌즈를 통하지 않고, 거울이 아닌 천에 맺힌다는 점은 다르지만 빛이 닿는 순간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카메라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닿은 풍경’ 연작은 커튼에 맺힌 상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그것이 재현의 대상이 되지만 ‘순간의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은 곱씹어 생각해 볼만하다.

1948년 알렉산드로 아스트뤽에 의해 주창된 카메라-스틸로(Camera-stylo : 카메라-만년필)는 헐리웃 영화들이 지나치게 스토리텔링에 치중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영화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영화 역시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작가의 사상이 추상적인 것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카메라는 소설가의 만년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임주연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뜬금없이 영화 이론을 빌어 온 이유는 작가가 한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 아스트뤽의 주장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혹은 커튼에 닿은 빛이 만든 풍경이 회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임주연은 회화(붓이 아니라) 자체를 만년필처럼 사용한다. 특히 순간을 기술하고 재현하는 작업 방식은 작품 내부에 스펙터클과 내러티브를 배제하고 온전한 순간의 정수만 남는다. 찰나의 본질이다.

이 찰나의 본질은 이런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카메라로 찍은 작가의 탈의 과정과 커튼에 맺힌 실내의 풍경은 그 자체로 제3자의 눈으로 본 시간이고 객관화된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찍힌 사진들 가운데 한 장을 선택해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객관화된 현실은 작가에 의해 주관화된다. 기계를 통해 객관적이고 물리적으로 포착된 순간은 작가의 주관화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설정되고, 이를 통해 객관적인 현실적 이미지에 상응하는 주관적이고 잠재적인 이미지가 발생한다. 즉 임주연은 작업은 과거에 포착된 이미지를 현실의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나아가 현실의 한 순간을 잠재적이고 비현실적인 순간과 병합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카메라와 캔버스 사이를 오가는 동안 임주연은 작업에 시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임주연의 작업은 들뢰즈의 크리스탈-이미지(imgae-cristal)처럼 과거와 현실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희뿌연, 모호한, 길.

임주연은 작업노트를 통해 ‘모호한 불확정성’이 실체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 내에 혼재한 ‘모호한 불확정성’을 얻기 위해 물리적이고 정확한 기계를 사용한다는 점이고 그것을 다시 매우 주관적인 시간과 촉각의 개념으로 변환시킨다는 점이다. 사실 임주연의 회화는 얼핏 트렌디하고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히스토리와 내러티브로 가득 찬 2013년 젊은 작가들의 회화와는 걷는 길이 다르다. 미술 장르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현재 시대 분위기와,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여 재현하는 것으로 실체를 찾는 작업은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린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작품에서 반짝이는 이미지 하나만 발견하게 하는 임주연의 작업은 그래서 불친절하고 쉽지 않다.

벗어놓은 옷과 탈의 과정 그리고 커튼에 비친 풍경까지, 작품의 대상은 다양해졌지만, 그리는 방식까지 달라지거나 다양해진 것은 아니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작품 자체의 성취 역시 작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임주연은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비현대적인 가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 실체와 본질을 찾기 위해 회화를 만년필처럼 사용하는 작가가 그 길의 끝에 만나게 될 것이 어떤 형태가 될 지, 어쩌면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 작업을 해오는 동안 결국 작가가 찾기를 바란 것이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듯, 길의 끝에서 임주연이 발견할 수 있는 것 역시 모호한 이미지 뒤에 가려진 명징한 실체일 것이다.

갤러리 버튼 함성언

작가노트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인지하며 살지는 않는다. 나의 작업은 모호함을 인지하는 경계를 표현한다. 그 중에서도 나 자신의 탈의 장면을 소재로 하기에, 스스로 모든 작업과정에 참여한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쉽게 인지하거나 주목하기 어려운 어떤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과정을 카메라로 포착하여, 확대된 크기로 캔버스에 구축한다. 장면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미리 구도를 고려하지 않고 기록하여 이미지는 흐릿하게 담긴다. 그럼으로 인해 응시의 주체와 객체가 동일하면서도 대립하는 불확실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모호한 불확정성이 어쩌면 실제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작업을 위해 모은 사진 속 대상은 모두 본인이다. 나는 사적인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탈의 장면을 셀프타이머 기능을 이용해 연속으로 촬영한다. 카메라의 혹은 그 누군가의 시선을 제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타자의 시선이 충돌한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회화 매체로 연장시키며 모호한 순간에 시간을 덧입힌다. 극적으로 연출된 순간이 아닌, 의식이 차단된 제작 과정에 의해 신체는 잘려나가고, 피사체는 흔들린다. 회화로 표현하는데 있어,‘흐릿함’은 화면 안에서 중요한 미적 장치로 자리 잡으며 시간성과 유동적 해석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피부에 닿는 옷의 느낌과 표면에 그려지는 붓질이 불러일으키는 촉각적 경험을 통해, 옷이라는 소재와 회화적인 실체를 유착시키는 방식이 작업의 지속적인 재현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예민할 수 있는 개인의 탈의 장면을 담아냈다. 작업의 원천을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주제를 드러내는 다른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필요로 한다. 피부와 캔버스에 닿는다는 이 촉각적인 느낌의 연장에 있어서 창문에 ‘닿은 풍경’을 새로운 연작으로 표현한다. 커튼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 실내에서 비쳐 나오는 은은한 빛과 무엇인지 모를 그림자 같은 형태가 그것이다. 밝음 에서의 빛, 어두움 에서의 빛, 어두움 에서의 어두움,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것에서 파생되는 형태와 색감에서 느껴지는 ‘희끄무레함’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가까이 스치는 순간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리는 행위 자체가 더해지면서, 자아와 타자, 현존과 사라짐의 경계를 오가며 그 관계성에 질문을 던진다. 붓질과 시간을 쌓아 올리면서 우연성과 몸이 개입되며 물감이 쌓여간다. 그려진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한 화면에 공존하게 된다. 작품 제작 과정 중에 발생하는 모든 흔적들은 일종의 변형을 일으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유동적 해석에 대한 여지를 둔다.

임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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