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Line

이선환 개인전 <Dead Line>

2014. 8. 15 – 8. 29

 

 

그야말로 치킨의 시대다. 면도 술도 치킨의 품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면 무조건 치킨을 먹여야 한다는 농담도 하고, 기분이 좋거나 안 좋거나 치킨은 언제나 답이 된다고도 한다. ‘3대 느님’이라며 유재석이나 박지성, 김연아를 언급할 때, 사람들은 ‘치느님’이 빠졌다며 ‘4대 느님론’을 설파한다. 전기통닭이나 시장 닭튀김에서 시작한 미미한 교세는 이제 그 어떤 신앙보다 열광적이고 독실한 신자를 다수 보유한 ‘홀릭holic’의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 하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토록 사랑 받는 치킨이니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닭고기 소비 국가일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닭고기 소비량은 의외로 세계 최하위권을 전전하는 수준이다. 평균 8마리, 10kg 내외에 머무는 닭고기 소비량을 15kg으로 늘리기 위한 운동이 전개될 정도다. 닭만 그런 게 아니다. 회식만 했다 하면 1차는 삼겹살에 소주고 2차는 치킨에 맥주인데 돼지고기는 1년에 20kg도 먹지 못하고 비싼 소고기는 9kg가 안 된다. 육류 전체로 볼 때 미국의 1년 평균 육류 소비량은 120kg이 넘지만, 한국은 그 절반이 채 안 되는 54.1kg이다.

 

한국의 밥상에 본격적으로 고기가 등장한 것은 100여 년 정도에 불과하다. 조선 이전까지 이 땅을 지배한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육식은 자제되었을 것이고, 조선 시대로 넘어가도 농본의 시대에 소를 잡아 먹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경운기를 팔아 밥을 먹는 일이나 다름 없었기에 상상하기 어렵다. 큰 잔칫날 겨우 닭 몇 마리, 돼지 한 마리 잡아 그걸로 굽고, 삶고, 찌고, 국물까지 우려먹는 게 당시의 육식문화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즉 우리의 육식은 조선 말기 개항 이 후, 허연 피부에 덩치 큰 사람들이 밥도 없이 고기를 썰어 먹는 걸 보며 시작된 식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짧은 시간에 우리는 서구 전근대 문명과 더불어 시작된 육식문화를 절반이나 따라 잡은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서양 사람들이 먹는 고기는 열강의 상징, 힘의 상징이자 근원처럼 보였을 것이다. 1970년대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차범근이 턱없이 밀리는 몸싸움을 이겨내고자 내린 결론은 한 끼 두 장씩 덜 익힌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키운 게 아니라 소고기로 단백질을 쑤셔 넣고 뛰는 것으로 파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몸이 안 좋은 사람에게 고기를 먹인다. 여름에 땀이 많이 나도 고기를 먹이고, 겨울에 추워도 고기를 먹인다. 닭장 안에서 매일 달걀을 낳던 닭이 더운 여름 잘 보내기 위해 밥상에 올라오고, 아침 등굣길을 배웅하던 백구가 아버지와 친구들의 보신을 위한 재료가 된다. 애완과 반려의 개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나라에서는 아직 나의 친구가 나의 밥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 과장이라고? 잘 알려진 성남 모란시장까지 가기 어려운 사람은 서울 한복판 황학동 중앙시장에 나가보길 권한다. 골동품과 주방용품 사이에 도는 퀴퀴한 냄새의 근원이 머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선환의 작업은 그렇게 우리를 위해 사라진 것들을 위한 진혼이고 씻김이다. 더불어 그것은 조심스런 고백이고 이어진 것들의 확인이다.

 

클레이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만든 작품에는 지문으로, 혹은 손자국으로 작가의 흔적이 남는다. 수백 개의 작업 모두에 고스란히 남은 ‘마음을 쓴 흔적’은 우리가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이선환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나 육식 문화 자체를 섣불리 비판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나 때문에, 혹은 나를 위해 죽어야 했던 것들에 대한 동정과 이해를 보이려 한다. 어린 시절을 동물과 함께 보낸 작가에게, 죽은 동물을 작업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이 언제 죽어 밥상에 오르게 될 지 모르는, 그야말로 마당 안에 삶과 죽음이 뒤섞인 유년기가 작가에게 남긴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차원의 것만은 아니었다. 어렴풋하게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고, 그 구별을 생겨나게 하는 이유에 대한 어린 고민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작업에 남은 손자국은 그런 마음이 전해진 흔적이고, 그런 마음을 전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데드라인>은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최종적인 한계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좁은 폭으로 디스플레이 된 클레이 인형들이 만든 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백 개의 죽음이 만든 선이며, 동시에 수천 번의 어루만짐이 만든 수백 개의 연민의 선이다. 그러므로 전시 제목 <데드라인>은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는 <데드-라인>으로 단어를 분리해 읽는 편이 옳다. 아울러 이 ‘선’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의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진 사육의 역사는 할아버지의 사후 끊어지게 된다. 어쩌면 이선환의 작업은 아버지의 고백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라던 아버지의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였을 고백이 이선환의 작업 안에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의 선’이며 ‘연민의 선’은 동시에 가족임을 확인하게 하는 ‘마음의 선’이며 그야말로 ‘혈연’이다. 그것이 이선환의 작업들이 대승적이고 일반적이지만 한 사람의 심상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갤러리 버튼 함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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