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

오용석 / 장파 2인전 <XXX>

2015. 4. 3. – 4. 24. 

 

 

이마주_image

1980년대 이 후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 알랭 레네 대표되는 누벨바그_Nouvelle vague 영화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대중문화에 물들기 시작한 프랑스인을 극장으로 불러 오지 못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된다. 한국에서는 누벨이마주_cinema du look로 불리는 이 경향은 장 자끄 베넥스와 뤽 베송, 레오스 까락스 등의 감독으로 대표되며 정확히 누벨바그 영화의 대척점에 서 있는 영화_적극적인 세트 촬영, 인공 조명의 활용, 과도한 음향과 영화음악_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영화사, 영화미학적으로 누벨이마주 계열의 작품들은 분명한 공과가 있지만, 적어도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였으며 적어도 그들의 미장센은 분명히 ‘성취’라 부를 만 한 것이었다. 그들은 있을 법 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장소와 사건, 순간을 만들어 냈고 그들이 만든 결과물들은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베티블루>나 <그랑블루>, <퐁네프의 연인들>을 예로 들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페인팅_painting

여전히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대형 갤러리들과 도제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경향과 유행이 존재하며, 현대 한국의 회회사와 회화의 미학에 대한 연구나 성찰이 부족한 채로 진행되는 이즈음의 회화에는 일종의 전형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 막 작가가 된 신진작가들의 작업들은 대체로 그 모두를 관통하는 일정한 흐름이 종종 감지되곤 하는데 거대 담론을 생산하거나 포함해야 한다는 신념과 개념적이고 사회 참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도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아울러 특정 시점에서 포착된 풍경과 물리적이든, 심상적이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 객체화 된 사회구성원을 재현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 역시 작품의 전형성에 대한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의 작동원리에 철저하게 발맞춰 움직이는 특정 장르의 경우는 따로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능이 멈춰버린 시장과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무지와 무과심이 만든 슬픈 풍경이다.

 

오용석, 장파

오용석의 작품에서는 종종 미묘한 지점이 느껴지곤 하는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재현의 대상이 ‘기억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관능 그 자체를 포착한 것이 아니라 절대 표피적이고 촉각적일 수 밖에 없는 관능의 흔적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 그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환상 혹은 환타지라고 치부될 수 있는 순수하게 주관적인 순간,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들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존재로 작업에 작용한다. 그의 작업에는 공간예술임에도 시간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반해 장파는 나무에 도착증을 가진 Lady-X라는 소녀/여성을 주인공으로 둔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낮의 유령들>이란 제목의 시리즈를 통해 Lady-X가 숲(으로 은유된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들이 활성화되는 공간)에서 낯선 존재들을 만나며 자신의 판타지를 실행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낮의 유령들>에서는 Lady-X의 나무에 대한 사랑을 통해 소녀, 여성, 남성의 판타지에서 보이는 성적 응시의 시선을 뒤섞기도 하고, 분리, 조합하기도 하며, 또한 그녀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의 여로를 통해 그녀만이 바라 볼 수 있는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을 일종의 관음증을 가진 탐욕스러운 목격자로서, 혹은 판타지의 주체로서 회화의 장면에 끊임없이 개입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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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전이 결정된 이후 오용석과 장파는 전시에 분명한 지향점을 두고 싶어했고, 그건 갤러리에 일종의 전선_戰線 또는 경계선을 긋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갤러리라는 공간은 대체로 전선이 아니라 휴전선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거간꾼의 특성상 생산자와 소비자의 욕망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도록 어느 한 쪽의 욕망과 성취가 더 커지는 것을 어른스런 방식으로 막는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두 작가가 긋고 싶어한 전선 혹은 경계의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의 정체가 명확해졌을 때, 갤러리가 전선이 되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현재 남한의 회화씬에 대해 오용석과 장파는 따분함과,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앞서 기술한 동시대 한국 회화의 전형성이 그들을 무료하게 하고, 동시에 꿈틀대게 했다고 믿는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엇비슷한 그림들 사이에서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단순히 남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가라는 평가가 아니라 회화가 가진 한계를 밀고 나가는 작가로서의 자아인 듯 하다. 그들이 원하는 전시의 형태가 그간 버튼이 공간으로서 취해온 포지션 혹은 지향하는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믿었다. 이 전시는 갤러리에게도 향후의 노선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누벨바그의 위대한 성취 이 후 동어반복과 자기복제가 계속되던 프랑스에 누벨이마주라는 새로운 경향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영화 문법을 습득한 젊은 영화 감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누벨이마주는 그 한계가 명확한 경향이었지만, 그것은 이제껏 없던 새로운 시도였고 그것으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프랑스 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점 역시 확실하다. 오용석과 장파는 이미지가 가진 힘으로, 회화 자체가 가진 힘으로 작업을 풀어낼 수 있는 작가들이다. 엇비슷한 풍경들이 양산되는 지금 여기,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이곳을 남다르고 풍요롭게 한다.

갤러리 버튼 함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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