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가

조경란 / 황연주 2인전 <헌화가>

2015. 7. 24. – 8. 2. 

 

 

<작업노트>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곧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꽃의 시듦이 그 현재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듯이, 눈앞에서 곧 사라져버릴 것임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하찮은 일상은 의미 없는 소소한 부분들조차도 한없이 소중해진다. 과거와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시간들은 찰나와 같은 무수한 순간들로 이어져있고, 이러한 시간의 유한성은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시들어버리는 기억에 대한 아쉬움을 가져다 준다. 특히 나는 마르고 시든 꽃들에서 한계를 다하고 스러져가는 애처로움 같은 것을 보곤 한다.

 

2006년 군산 해망동의 언덕위에 피어난 잡초들을 소재로 한 <그림자 드로잉>이라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나는 실제 이미지보다 그 이면에 깔려있는 소위 ghost image와 비슷한 것들에 끌리기 시작했다. 잉크를 사용하지 않고 프레스의 압력만을 이용하여 만들어내s는 엠보싱 이미지는 2008년 호주의 Bundanon Trust 레지던시 기간 동안 처음 시도한 것인데, 작업실 공간을 감싸고 있던 깊은 숲 속에서 만난 이름 없는 꽃과 풀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숲 속에서 꽤 많은 낯선 식물들을 채집하였고 그것들을 책갈피 사이에 넣어 국내로 가져왔지만, 이미 시들어버린 식물들은 희미해져 가는 추억같이 빛이 바랠 뿐이었다. 이미 빛나던 숲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말라버린 식물들이 무엇이란 말인가?

대신 나는 퇴색된 추억들과 마주하기로 했다. 색깔이 최소화되거나 배제되고, 엠보싱embossing으로만 표현된 식물의 이미지들은 내가 생각하는 꽃의 이면에 숨은 그림자들이다.그리고 이 과거의 꽃들은 우리가 아무리 지켜내고자 해도 언젠가는 흔적만을 남기고 희미해져 버리는 여행의 기억과 같이, 잉크로 그려진 것이 아닌 무거운 압력에 의해 자신의 자국을 종이에 새기고 있다.

이후 나는 몇몇의 국, 내외 여행을 통해 식물들을 채집하였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그림자를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4년 방문한 러시아의 바이칼호 부근의 식물들과 2015년 초 방문했던 인도 각지에서 가져온 식물들의 ghost image들이 선보인다.

 

– 황연주

 

 

일년 전, 세상에 나오다 만 말들, 외침, 웃음, 울음이 있었다

말들은 수신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잘게 부서져서

파도가 되고, 물거품이 되고, 물안개가 되었다

모두는 그들이 한 순간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줄 알았다

나는 말의 채집자, 사금을 그러모으는 수거자

말들은 누군가의 글 속에서 반짝이고

누군가의 말 속에서 불현듯 나를 향해 몸을 튼다

그러면 나는 허겁지겁 말들을 데려와서 안아준다

그렇게 어루만지다 보면

다시 만난 말들은 서로의 허물어진 곳을 서로의 몸으로 채워주며

저들이 알아서 못다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더 잘게, 더 잘게 잘라지며 수평면으로 무한히 연장될 줄로만 알았던 말들은

수평축이 회전하여 수직 축이 되고,

바닥이 솟아올라 벽이 되고,

중력의 모든 질서가 재편되어

물이 빠진 바닥이 한치의 숨김도 없이 전면에 드러나는 어느 날 아침

들어올려진다

우리의 눈앞에 일으켜 세워진다

 – 조경란

*조경란의 작품에 사용된 시들은 시인 진은영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2012)에서 발췌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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