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잠들 수 없어

송지원 개인전 <이대로 잠들 수 없어>

2015. 8. 5 – 8. 19.

 

 

누군가 전시 서문이라면서 일기장에나 쓸법한 글을 쓰는 이유를 묻는다면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내놓는 속내야말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혹은 숨은 생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련다. 촌스럽게도, 나는 아직 미술의 가장 큰 가치는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도 이 모양이다.

 

작년, 송지원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던 날, 하필 나는 맨발에 구두 차림이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닭도리탕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편의점에서 검은 정장 양말을 사신고 좁은 자리에 끼어 앉게 된 것은 드디어 그녀와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작업들은 오직 그녀만 알 수 있는 기호가 되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내 속에도 스스럼 없이 들락대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 수 없는 오롯한 송지원의 경험과 기억들이 마치 오래 전부터 내게도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고 났기 때문이었다. 왜 좁은 방 안에 비닐로 장막을 치고 들어가 앉아 석고 캐스팅을 뜨고 갈아냈는지, 몸에 좋지도 않은 크레파스를 녹여 꽃을 만들어 냈는지, 사방 널려있는 물건들을 모아 위태롭게 탑을 쌓았는지, 나는 꽤 뭉클해하며, 그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서문을 쓰는 중에 작업노트를 읽는 것은 빠지지 않는 과정이다. 작업노트는 오래된 설렁탕집들이 그렇듯 오래 끓이고, 여러 번 걸러내 맑지만 진득한, 그래서 아이러니한 육수와 비슷한 물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작업노트를 읽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육수를 뺀 설렁탕을 먹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전시 전, 마지막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일산 외곽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 들렀을 때, 여러 번 들었던 그녀의 새 작업들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너무 새롭거나 놀라워할 작업들이 분명 아니었는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인터뷰의 대상이 된 것처럼 떠들고 있었다. 소소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비롯된, 너무 개인적이라 딱히 누구에게 말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던 이야기가 술술 잘도 흘러나왔다. 분명 작가의 어느 시기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녹아있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끝은 나였다. 작업에 들어가 앉은 송지원의 감정들이 허락도 없이 속에 들어와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건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불쾌하고 진이 빠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오래 끓이고 여러 번 걸러낸 그녀의 정수를 다시 읽었을 때, 혹시나 같은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글을 쓰는 나는 겁이 조금 난다.

 

1년 전, 기억처럼 차곡차곡 쌓여 올라간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은,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올라간 수평자와 옷핀은 그렇게 어제와 오늘이 쌓여 올라간 송지원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되새김이었고, 그래서 그토록 쉽게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지금 송지원은 석고로 캐스팅을 뜨고,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특정한 시점의 기억을 끄집어내 쌓은 이번 작업은 형태와 구성이 다를 뿐 지난 개인전의 작업들과 일맥상통한다. 꾸준히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에게 굳이 작업의 맥락과 일관성을 요구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새롭게 준비한 작업들 중 일부는 이번 전시에 내놓을 수 없었는데, 그 작품 역시 개인적인 경험과 그 기억을 특정한 사물에 투사하여 나름의 알레고리를 창조한 형태의 작업이었다.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고, 기억들이 쌓여 지금 이 순간을 만든다. 위태롭지만 열심히 제자리를 잡고 올라가는 송지원의 작업은 그래서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 때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있는 곳을 알아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돌아본다. 예전에 다녔던 화실 건물을 캐스팅한 작품을 지나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매달려 있는 작품 뒤로 부서진 캐스팅 조각들을 다시 붙이고 쌓은 작품이 보인다.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을 따라 돌아가면 조각이 돼 부서진 기억들이 예상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형태를 만든다. 이런 디스플레이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간과 기억 위로 단단히 자리잡고 서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실에 매달리고 의자에 기대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지금이다. 그러나 기억을 부수고 조각 낼 의지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그걸 다시 붙여 올려 생각도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송지원의 작업은 관람객을 남의 일기장을 읽는 사람으로 만들어 공감을 이끌어 내지만 동시에 관람객의 일기장도 꺼내 다시 읽게 만든다. 남의 기억을 통해 나의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는 일견 따뜻한 감정이 오가는 순간일 듯 하지만, 모든 기억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기어이 건드리고 싶지 않거나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 눈 앞에 맞닥뜨리게도 한다. 안정적으로 쌓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의 약한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송지원의 총천연색 석고 조각들과 비슷한 구조다. 그녀의 작업은 양가적이다.

 

오랫동안 석고라는 재료를 사용해 온 이유도 이 지점에서 해석해 봄직하다. 석고는 단단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깨지기 쉽고 표면은 갈아낼 수 있을 만큼 무르다. 안정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겨우 중심을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삶의 은유인 듯 하다. 그렇다면 작품으로, 또 작품의 소재로 송지원이 쓴 일기는 오래 전 기억의 반추일 뿐 아니라 오늘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의 재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부서진 옛 기억을 다시 쌓아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형태를 만드는 송지원은 그저 관조하는 삶을 지나 움직이는 삶으로, 제 모습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송지원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갤러리버튼 함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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