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_The Waves

김현정 개인전 <파도_The Waves>

2015. 11. 11 – 12. 1

갤러리를 운영하며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우리 갤러리를 좋아하는 때’다. 분명 그렇다. 작품을 비싸게 많이 파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건 기쁨의 크기와 형태가 다르다. 묘한 감동과 뜨거움이 울컥 터지는 순간이다. 몇 명의 작가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당연히 김현정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그의 붓질이 좋았고, 속을 쏟아낸 듯한 이미지들이 좋았다. 하지만 좋다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고, 그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언젠가는 꼭’ 정도가 전부였다. 다른 작가의 오프닝 뒷풀이 자리에서 또 그 말을 했을 때, 김현정이 말했다.

‘나는 왜 안 불러요?’

그는 내가 그 말을 듣고, 어디부터 얼마나 흔들리고 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를 게다. 그런 김현정의 전시다. 아주 다른.

목탄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그렇게 믿는다. 목탄이 그어진 자리에는 딱히 재주와 생각을 숨길 데가 없다. 가진 것이 얼마가 되었든 다 내놓길 바라는 매체가 목탄이라고, 그래서 목탄으로 그어진 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털썩 주저 앉아 버리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쌓여서 더 깊어지는 김현정의 붓질 사이를 걷다 발견한 검은 선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작년 김현정의 개인전에 걸린 드로잉이 그랬다. 언젠가 전시를 하자고 꼭 말해야 할 작가였지만, 그렇게 급작스럽게 전시를 제안하게 될 줄은 또 몰랐다. 검은 선들 앞에서 나는 김현정에게 이번 전시를 제안했고, 그녀는 고맙게도! 기꺼이 제안에 응답해줬다.

버튼은 대체로 작가의 전시에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경우는 전시장에 작품이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 작품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무책임할 만큼 작가에게 맡겨둔다. 그것은 디렉터의 심미안을 믿는다든가 작가의 공력을 믿는 것과는 다른, 공간의 성격을 규정짓고 컨셉트와 캐릭터를 강화하는 의식 같은 것이어서 대체로 작가들이 무얼 하든 그냥 두는 편이다. 김현정에게는 드로잉 전시를 제안했다. 미려하게 빠진 붓질의 힘보다 더 세다고 믿게 된 굵은 입자의 검은 선 앞에서 그렇게 제안했고, 그는 머뭇대지 않고 대답해준 게다. 그리고 근 일년 간을 가끔씩 지나치며 만나면서도 딱히 다른 얘기가 오고 가진 않았다. 그냥 작가는 열심히 한다고 말하고,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하는, 되게 뻔한 소리나 하고 한 번 웃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였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를 기다리고 지켜보는 사이, 나는 10년 전 다니던 직장에 운 좋게 다시 들어갈 기회가 생겼고, 그 운을 내치기에는 갤러리도 나도 괜찮은 척 버티고 서있기 쉽지 않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그는 작업실을 옮겼다는 소식을 전했고, 꽤 지하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려니 했다. 이 시기 작가들은 거의 다들 그러고 있으니까.

전시 전 인터뷰를 위해 회사를 마치고 김현정의 작업실로 가는 길, 나는 그저 이 피곤함을 어떻게 이기고 인터뷰를 할 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그건 작가에 대한 신뢰에서 기인한 당연한 일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는 정류장 앞에 서 있었고 어딘가 어중간한 시장통을 지나 고시원이 있는 건물의 지하 3층으로 나를 데려갔다.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을 누군가와 함께 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이유도 없이 아렸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이 모여있는 큰 건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을 시커멓게 그리고 있었다. 큰 파도와, 폭발하는 화산과, 아치 모양의 돌다리와 눈 내린 풍경이 온통 시커멓게 그려져 있었다. 진심으로 나는, 그것이 오롯이 지금의 나를 위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한 권을 보여줬고, 그 안의 단어들을 임의로 추출하고 조합한 시를 한 편 보여줬고, 작업을 하는 동안 그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 딱히 열심히 듣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어렵게 그렸다는 시커먼 파도가 나를 위협하고 있었고, 나는 그걸 피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아 먹힐 듯한 파도였다. 속을 후비는 파도였고, 또 그걸 매만지는 파도이기도 했다. 김현정의 파도는 위협과 위안을 동시에 주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대체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이 작품들을 드로잉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김현정은 지인이 농담처럼 말했다던 ‘드로잉을 하랬더니 목탄으로 페인팅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바다가 그렇듯, 김현정의 검은 바다는 다그치고, 거칠게 위협하는 동안 바라보는 이를 쓰다듬기도 한다.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 가진 거친 입자와 당장이라도 가루가 쏟아질 듯한 질감이 사라진 대신, 손으로 뭉개고 지워가며 만든 유려함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김현정의 목탄 작품이 양가적인지도 모르겠다.

김현정의 작업에 모순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는 10년 만에 해보는 ‘다른 일’이 주는 낯섦과, 그 낯섦을 견딤으로 얻게 되는 잠시간의 안도가 교차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주 개인적인 사정들이, 그의 작업과 조응했기 때문이란 말이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이런 것이다. 지극한 개인사들이 글이나 말로 표현되는 동안 그것이 마치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인 체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김현정에게 뜬금없는 감사를 전해야 한다. 지난 4년 성북동 언덕을 지키던 갤러리 버튼의 마지막 기획전에, 이렇게 내 속을 본 것처럼 재현한 작업을 내어준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제 버튼의 다음은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이 되거나, 어쩌면 꽤 먼 시간 뒤의 이야기가 될 게다.

부러 안쓰러운 몸짓으로 금방 스러지지는 않아도 되겠다. 이 파도는 김현정의 그것처럼 거친 위협이기도 하고, 동시에 깊은 위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갤러리버튼 함성언

<작업노트>

목탄으로 그린 풍경은 재료의 원초적인 질감 때문에 꿈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현실보다 생생한 꿈을 꾸었든, 꿈보다 몽롱한 현실을 살든, 삶은 계속해서 지나간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고  끝없이 반복된다. 나는 그 반복을 계속해서 보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거기엔 꿈 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한, 곧 사라지게 될 장면을 그리고자하는 충동이 있다.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은 아직 쓰이지 않은 단어처럼 보인다. 나는 때로는 예민하게 때로는 먹먹하게 그린 그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시가 되기를 바란다.

 

버지니어 울프의 소설 ‘파도’는 산발적인 독백들, 묘사들, 시간들이 특별한 사건 없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하지만 글의 아주 작은 부분마저도 너무 평범하고 또 너무 특별한 삶의 한 조각 같다. 나는 책에서 임의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 혹은, 문장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다시 선별하고 조합하여 하나의 시를 만들었다. 시는 우연인듯 만들어졌으나 나의 말 같았다. 나는 사라지는 장면처럼, 사라지는 말처럼 다시 시를 해체하여 그림들의 제목으로 붙였다.

 

사라질 듯이 보이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하늘에 별을 본 순간 이미 그것은  과거의 이미지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흘러가는 삶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짧고 강렬한 마주침의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그 흔적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현정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