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들의 생활백서

풀에 대한 관심은 그가 살던 수유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게다. 지금이야 서울 강북구 일대에서 가장 번쩍대는 거리 중 하나가 되어있지만 사실 수유리는 오래 전부터 서울권 등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동네였을 만큼 산이 가까운 동네였으니까. 다만 어린 김제민의 눈에 비친 풍경을 현재의 작업으로 이어진 유일한 이유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그가 풀의 일생에 인간의 삶을 대입시켜 바라봐야 직성이 풀릴 만큼 인간과 인간사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뼛 속 깊이 점철된 인간인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평범하고 흔한 사람일 뿐이다. 그의 작품 속 풀은 그렇게 우리를 닮았고, 작가 자신을 닮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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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ly

임주연은 작업노트를 통해 ‘모호한 불확정성’이 실체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 내에 혼재한 ‘모호한 불확정성’을 얻기 위해 물리적이고 정확한 기계를 사용한다는 점이고 그것을 다시 매우 주관적인 시간과 촉각의 개념으로 변환시킨다는 점이다. 사실 임주연의 회화는 얼핏 트렌디하고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히스토리와 내러티브로 가득 찬 2013년 젊은 작가들의 회화와는 걷는 길이 다르다. 미술 장르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현재 시대 분위기와,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여 재현하는 것으로 실체를 찾는 작업은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린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작품에서 반짝이는 이미지 하나만 발견하게 하는 임주연의 작업은 그래서 불친절하고 쉽지 않다.

롤랑의 노래_La Chanson de Roland

면을 반영하는 얼굴이 아닌 얼굴의 껍데기는 표면의 표상이다. 깊이가 없는 표층의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존재의 희미함이 새로운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틈으로 작용한다. 그에게 표면의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접면일 것이다. 욕망의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환상의 세계에서 욕망의 표면들과 조우하는 것, 즉 그의 그림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보다 현실의 욕망이 치환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그림을 읽어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But wait! There’s more

“소설을 쓰는 일은 결국 최선을 다해 세상과 사람을 짐작하려는 어떤 ‘태도’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작가는 ‘거리 두기’란 단어를 종종 사용했다. 속내를 그대로 내보이고,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하는 것보다 직접 깔아 놓은 멍석 위에 쌓일 남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편혜영의 글로 돌아가자면, 짐작의 주체가 확장되어 작가 뿐 아니라 세상과 사람 역시 작품 안에서 ‘태도’와 ‘역할’을 갖는 작업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채강의 새 작업에서 흩뿌려진 이미지 사이의 틈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 틈이야 말로 작가의 속내고, 하고 싶은 말이며 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태도다. 일련의 성장통 끝에 작가가 얻은 성찰, 혹은 통증의 결과물은 유려하게 말하는 재주가 아니라 잘 들을 수 있는 청자로서의 그것이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Still, Life.

작가들은 디테일이 사라진 풍경과 화려한 색채의 숲의 이미지가 우리의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그러나 삐딱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얼핏 흔한 풍경화로, 혹은 조형성에 집중된 그림으로 곡해될 수 있는 두 작가의 작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그것이 현실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고, 나아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감성을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조용한 풍경은 시끄러운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 뒷면에는 고요한 삶(still, life)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 혹은 누구의 삶은 여전히 계속(still, life)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풍경이 정물화(still life)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그저 우리는 보지 않았고, 볼 수 없었을 뿐이다

Dramatic scenery

이 ‘수집-해체-조합’의 과정에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반영(reflect)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 ‘다시(再, re)’ 창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작가의 작품 속에 보이는 저 극적인 풍경(dramatic scenery)은 작업 과정을 통해 투사된 작가들의 내면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든, 혹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에의 풍자든, 분명한 것은 두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은 대체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풍경이며 동시에 온전히 작가 자신의 풍경인 것. 이것이 우리가 작품을 통해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