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the waves_파해(破海)

박지혜의 작업은 스웨터에서 삐져나온 실오라기 같아서, 작가의 이야기를 잡고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아주 인간적이고 당연한 그러나 너무 내밀해서 공유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경험과 감정을 작가와 관람객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거대한 철학적 담론과 호기심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통해 모두가 목격했을 법한 사건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은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이야기+歌…to listen

완전히 다른 장르라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락과 힙합은 적지 않은 협업을 통해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런디엠씨Run DMC 는 를 탄생시켰고, 린킨파크Linkin Park 와 제이지Jay-z는 를 만들어냈다. 아예 록과 힙합은 핌프락Pimp rock이라는 장르로 결합되기도 했다. 거기에는 투 베이스와 트윈기타의 날카로움과 힙합의 그루브가 공존한다. 그 장르간 결합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락을 좋아하는 기획자가 힙합을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진행하는 이유고, 목적이다. PEACE!

열림_Omnipresent

한계령 삼거리에서 먼 바다와 금강산을 한눈에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작가가 정작 보고 있었던 것은 서울의 가로수다. 그건 채비를 갖추고 길을 떠나야 만날 수 있었던 풍경을 이제 살고 있는 ‘여기’서 발견할 수도 있었다는 독백 같은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작업의 방향성과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자연에서 받던 위안을 이제 다른 곳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노경희에게 ‘열림’은 곧 ‘omnipresent’와 같은 의미일 수 있다.

Dead Line

클레이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만든 작품에는 지문으로, 혹은 손자국으로 작가의 흔적이 남는다. 수백 개의 작업 모두에 고스란히 남은 ‘마음을 쓴 흔적’은 우리가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이선환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나 육식 문화 자체를 섣불리 비판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나 때문에, 혹은 나를 위해 죽어야 했던 것들에 대한 동정과 이해를 보이려 한다. 어린 시절을 동물과 함께 보낸 작가에게, 죽은 동물을 작업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Pick at a scab

나의 그림은 언제나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최근의 작업에는 잠들기 직전에 본 장면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강하게 잔상이 남는 꿈의 모습, 별것 아니지만 견디기 힘든 체험 같은 것들이 추가되고 있다. 어렸을 적 열병을 앓았을 때 보았던 환영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발작적인 개의 짖음이나 풀리지 않는 꿈의 모습들은 모른 채 넘기고 싶은 부분을 건드리는 것 같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밖으로 꺼내어 놓아야 한다.

상자 안의 고양이

조종성은 렌티큘러 작업을 통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고, 관측의 방향과 그 결과에 대해 관람객들이 명확한 위치를 갖길 원했던 것. 뚜껑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사회의 규범은 우리를 옭아 매기도 하고, 동시에 보호하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이 중첩된 사회의 모습을 조종성은 한 장의 사진에 담아 보여준다. 무엇을 보고 어떤 상태를 선택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지는 관람객의 몫이 된다. 이제 상자는 관람객들 앞에 놓여졌다.

능동포즈

POSE의 대표적 사전 의미로는 (그림이나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다와 (진지한 생각을 요하는) 질문을 제기하다가 있다. 전자는 시각이미지들 창출을 위해 창작자에 의해 연출된 수동자세이나, 후자로 본다면 새로운 담론 및 위기의식 등을 주변을 일깨워 함께 이끌어 가고자 하는 능동자세가 된다. 모델의 몸을 이상적 각도로 연결시키는 목선과 쇄골, 미세근육을 보여주기 위해 들려진 발 뒤꿈치,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미세한 손끝은 주변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시각예술가의 의도된 장치이다. 이 포즈들에서 미적 각도만 줄인다면, 굳은 신념을 가지고 동시대를 대하는 우리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별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도시의 텅 빈 형태들은 스스로의 무늬가 없고 서로 다른 무늬들이 침범하고 섞여 우주와 세계를 조화롭게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종교와 문명의 나열을 떠나 인간을 구원하고 위안하는 혹은 움직이게 하는 형태의 감각적 지점들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천 개의 꽃

알레고리로 가득 찬 숲이든 붉은 꽃이나 화염이든 그녀의 시선은 그 뒤에 숨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는데, 신화와 원시의 숲으로 표현된 원초적인 생명력 혹은 거칠게 불타고 있는 태양이나 화염으로 표현된 태초의 에너지가 그것이다. 임현희의 작업을 굳이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원초적 에너지에 대한 동경, 혹은 태초의 생명력에 대한 탐구’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