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_Omnipresent

한계령 삼거리에서 먼 바다와 금강산을 한눈에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작가가 정작 보고 있었던 것은 서울의 가로수다. 그건 채비를 갖추고 길을 떠나야 만날 수 있었던 풍경을 이제 살고 있는 ‘여기’서 발견할 수도 있었다는 독백 같은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작업의 방향성과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자연에서 받던 위안을 이제 다른 곳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노경희에게 ‘열림’은 곧 ‘omnipresent’와 같은 의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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